그늘진 하늘이 차가운 눈물을 흘렸다.
거기 그림자에 묻혀 사는 이여.
무엇이 그리도 슬퍼 우는가?
매서운 추위도 쓰디쓴 굶주림도
방황하는 영혼 앞에선
말없이 숨을 죽이는데.

세상을 걷는 이들의 발걸음은 멈추질 않건만
역류하는 이는 무엇이 한이 되었는지
잿빛 먹구름이 멈추질 않고
그대의 눈동자는 빛을 잃은 별과 같으니
죽어간 영혼들의 노래도
이제는 허탈하기만 하구나.

그대는 그림자만 바라보니
버려진 납골당의 시신도
그대만 하겠는가?
슬픈 영혼을 삼키듯
당신의 고통은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어느 날
펜릴이 불렀던 노래가 떠올랐다.

두 왕이 외치는 소리는
세상을 혼동으로 몰아가며

두 기사가 들어 올린 검날은
세상을 피로 물들게 하며

두 마술사가 휘두르는 불꽃은
세상을 붉게 태워버리지만

두 음유시인이 부르는 노래는
세상을 화음으로 단합시킨다.

번개가 바위를 때렸듯,
그대는 두 눈을 번쩍 떴다.

사나운 바람이 잠에서 깨어났으며
천둥은 폭주하듯 크게 소리 질렀다.
하늘은 감격하여 그대 위에서 눈물을 퍼붓네.

미친 듯 하프를 켰다.
눈물은 빗물이 되었으며
뜨거운 눈시울은 번개 빛과 함께 사라졌다.
의식 없는 당신의 눈동자만
예전의 그대 같으니.

그대의 노래는 도시 곳곳에 울려 퍼졌고
천둥소리가 도시 곳곳의 정적을 깨뜨렸다.
그리곤 그대는 한때 열정적이었던 천둥처럼
말없이, 그리고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지.

한 여인만이 당신의 뒤를 따라갔네.
그녀는 당신의 노래를 들었지.
유일한 동지였으며
유일한 단짝이 되었네.

여름날 아카시아 같은 그녀여!
왜 나를 따라오거늘,
그대의 향기는 나의 가슴속에서 속삭이는가?
하지만, 나는 애써 외면하리오.
나는 더 이상 누구도 곁에 두지 않겠소.
나는 심장은 바위며
나의 감정은 거친 파도,
말라비틀어진 고목이요.

그녀는 말했다.

당신의 피리 소리가 너무나도 가슴 아파서
결코 모른 척할 수 없었지요.

둘은 말없이 서쪽으로 떠났다.
평원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며
미소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아침에 떠오르는 광명은
저녁에 지는 잎새처럼 슬픔에 젖었고
그들을 지켜보는 밤하늘은
차가운 검은 바닷속에 슬픔을 감출 수밖에 없네.

슬프도다. 무엇이 그렇게 한이 맺었거늘
이성을 잃은 바다를 건넜으며
공포에 휩싸인 어둠 속을 헤쳐 나갔는가?
총명한 별들도 그대를 비쳐주지 못할 만큼
무엇이 그리도 서러웠는가?
그대의 발걸음은 끊이질 않네.
그대의 하프는 멈추질 않네.

밤이 말없이 다가오면
달빛 아래 늑대의 울음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지거늘
그대는 두렵지 않았다.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었다.
그대를 믿은 여인도 두려울 게 없었다.
잃을게 없었던 만큼
두려움은 한낮 무의미한 존재였다.

황혼의 하프를 찾기 전까지
당신은 미아처럼 대지 위를 헤매고 다녔으리.

도대체 황혼의 하프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거늘
그대는 죽은 펜릴의 말이
진실이길 바라는가?

오오! 더 이상 말하지 말게.
내 목소리 평원 위를 흔들며
저기 골짜기에 닿거늘,
나는 그 골짜기를 찾아왔을 뿐이라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아찔하게도
돌이킬 수 없는 절벽 위에 서 있지.
나는 뒤돌아서지 않겠어.
앞으로 나아갈 것이오.
설령 망막한 암흑 속으로 떨어질지언정
나는 뒤돌아서지 않겠어.

외로운 산에 도달하였다.
그들의 발걸음은 멈추질 않아.
큰 거인, 작은 거인, 외눈박이 거인도
그들의 앞을 막지 못했으니
떨어지는 빗방울마저 그들을 피해 세상을 적셨다네.

아, 달빛 아래 별들은 황급히 몸을 숨기고
그대의 그림자 너머 은빛을 번뜩이는 저 피리는
왜 이리 슬픈 멜로디를 흘리던가.
나의 가슴마저 슬픔으로 젖어드는구나.

고목나무 뒤에서 그녀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지.

다음날이 되었네.

칼날보다 차갑고 달빛보다 슬픈 외로운 산은 아무도 알지 못한 곳.
그리고 외로운 산의 황혼의 하프는 진정한 시인에게만 부여되는 것.

마침내 외로운 산의 정상에 도달한 그들은,

아!

도대체 무엇을 발견할 수 있었던 말인가?
그는 슬픔에 젖어들 수밖에 없었다네.
그토록 믿었던 황혼의 하프를 찾아 여기까지 왔건만
친구의 믿음을 이루기 위해 여기까지 왔건만.

아, 펜릴이여! 정녕 당신이 믿었던 신념이란 건
아무것도 남지 않은 채 내게 허탈감을 안겨주었소.
여기서 나 아무리 둘러보거늘
황혼의 하프라는 건 거짓이란 것 밖에 발견하지 못했소.
그것이 나에게 남겨진 마지막 짐이었을지라도.

외로운 산에서 그는 하프를 꺼내들었네.
하프를 켰네.
그것은 마지막 노래였지.
그래, 마지막 노래였다네.

하지만,
그것은 노을의 여운보다,
외로운 달빛보다 슬픈 적막감을 주었다.

여인은,
그를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렸지.
황혼이 밀려들면서 그녀의 가슴은 절정에 도달하였지.
황혼 속에서 들려오는 그의 하프 연주 소리에 그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격에 겨웠다네.
아, 그것이 바로 여기에 있었구나!

황혼에 물든 그대와,
황혼 속에 울려 퍼지는 그의 연주는
황혼 속에서 지켜보는 여인만이 발견할 수 있었던 것.

선율은 빨갛게 달아올라 말없이 떨리며
주홍빛 황혼과 동화되었지.

그날, 세상 사람들은 울었다네.
의로운 기사는 나라를 위해 울었고,
남편 잃은 아낙네는 슬픔에 잠겨 울었다네.
바다를 찬양하는 뱃사람들은 폭풍우를 만나 울었고,
염치없는 거지마저 나라를 빼앗겨 울었네.

그리고 황혼의 하프를 발견한 이는
그 여인 밖에 없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