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중학생 시절의 이야기이다. 당시 살던 동네의 환경은 그다지 좋진 않았다. 동네 거리는 전봇대의 너저분한 전선들과 늘어진 차량의 불법 주차로 매우 어수선했었는데, 도로 바닥마저 여기저기 금이 가 있거나 시멘트를 덧대어 곳곳이 울퉁불퉁하여 보기 좋지 않았었다. 하물며 길가엔 언제나 쓰레기가 고여있었고 전봇대 밑동 역시 항상 쓰레기 더미가 존재했다. 그 시절 나의 통학 풍경은 그러했다. 하지만 더 인상적인 풍경 중 하나는 통학 길에 있는 작은 하천이었는데,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그 하천을 따라가다가 하천 위의 허름한 다리를 나는 지나야만 했었다. 물론, 그 하천 부근 역시 도시의 매연으로 검게 그을리고 쓰레기가 썩어서 여기저기가 시커멨으며 하천의 물 또한 오염되어 악취로 가득했다. 특히 탁한 하천의 썩은 물은 녹조까지 심했으며 수포와 더러운 쓰레기가 수면 위 곳곳에 존재했다. 그곳 풍경과 악취는 나에게 결코 좋은 인상을 남기진 못했다. 심지어, 난 가끔 그 하천의 물을 마시곤 녹색 괴물로 변해버리는 상상을 하곤 했었으니깐. 어쨌든, 나의 통학 길의 풍경은 그러했다. 평균 내 학교 통학 시간은 어림잡아 30분. 평소 나는 학교를 달리다시피 다녔으며 특히나 지루한 등하교 시간은 나에게 너무나 아까운 시간이었다.

어느 날, 난 늦잠을 자곤 허겁지겁 학교를 향해 뛰어갔다. 때는 이른 여름이었다. 그날도 역시 하천을 지나 학교로 가야만 했는데, 하천을 따라 놓인 길을 지날 즈음에 난 속보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멀리 보이는 하천 다리 중간 즈음에, 눈에 띄는 작은 뭔가가 다리 밑에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서퍼런 작은 무언가였는데 여름날 아침의 하천 다리 밑은 대낮처럼 훤했다. 게다가 하천 다리 밑 천장은 매연으로 시커멓게 그을린 이끼들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대조적으로 눈에 띄게 잘 보였다. 하천 다리에 도달할 때쯤, 난 그게 새임을 알 수 있었다. 그건 파랑새였다. 어느 날 갑자기 그 새는 하천 다리 밑에 둥지를 짓곤 홀로 살기 시작한 것이다. 새의 파란빛이 신기했지만 그다지 나의 관심거리는 되지 못했다. 난 파랑새를 스쳐 지나가듯 쳐다보곤 지나갔다.

이후, 이상하게도 그 하천을 지날 때마다 나는 다리 밑에 그 파랑새가 있는지 꼭 확인했다. 처음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지만, 그 새는 왠지 모르게 나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 새가 그곳에 머무는 것이 신기했다. 파랑새를 처음 보기도 했지만, 새가 보유한 파란 깃털은 하천 다리 밑의 매연으로 그을린 새까만 그곳과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한마디로 어울리지 않았다. 최소한 그 새가 아름다운 정경의 숲속에 살아야 한다고 난 생각했다.

비 오는 어느 날, 하굣길에 난 그 새를 가까이 가서 관찰하기로 결심했다. 오후 다섯 시쯤이었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다리 밑에는 아무도 없었다. 우산을 든 채, 난 홀로 다리 밑에 서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다리의 천장 높이는 내가 서 있는 도로로부터 약 4미터가량의 높이로 그다지 높진 않았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소리와 다리에 맺힌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뒤엉켜 다리 밑에서 웅성웅성 메아리를 치고 있었다. 난 비에 옷이 홀딱 젖은 채, 지푸라기와 흙으로 만든 새 집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집은 겸손하다시피 작았으며 그 안의 파랑새는 눈을 감고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그 새는 내 주먹보다도 더 작아 보였다. 몸은 마치 작은 푸른 잎사귀처럼 보였으며 그 사이로 아담한 검은 부리만이 눈에 살짝 비쳤다. 나는 그 새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근데 그 새가 가진 파란빛은 왠지 모르게 구슬펐다. 그 새는 잠을 자면서도 덜덜 떨고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곤, 난 집으로 발걸음을 곧장 옮겼다.

이후, 나는 그 새가 조금씩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 새가 병들진 않을지 의심되기도 하였다. 그곳은 그 새가 살기엔 적합한 곳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새의 보금자리가 따로 필요한 건 아닌지, 대기 오염으로 인해 질식하는 건 아닌지, 내가 직접 그 새를 그곳으로부터 구원해줘야 하는 건 아닌지 이런저런 생각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집에 도착하면 금세 그 새의 존재를 잊을 수 있었지만, 하천을 지나갈 때면 그 새를 다시 확인하곤 잊고 있었던 그 새가 다시 신경 쓰였다.

그 새는 언제나 집에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난 한 번도 그 새가 노래를 하거나 우는 모습을 보진 못했다. 그 새는 그저 고요히 잠을 자거나 둥지에서 여기저기 가만히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새를 볼 때마다 측은한 감정이 들기도 했는데, 텅 빈 새까만 다리 밑에 홀로 있는 그 새는 왠지 모르게 가엽고 슬퍼 보였다.

여름의 막바지쯤, 그날도 둥지 안의 그 새를 지켜보았다. 그 새는 어느덧 많이 야위어 있었다. 그 새의 파란 빛깔의 깃털 또한 탁한 남갈색으로 바래 있었다. 난 그 새가 매우 안쓰러웠다. 그 새는 마치 최후의 통첩을 기다리는 것처럼 불안해 보였다. 어쩌면 나한테만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지 언정, 그 파랑새는 누군가가 돌봐줘야 할 야윈 소녀 같은 존재처럼 내게 느껴졌다. 난 그 새가 머지않아 이곳을 떠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그때가 내가 본 파랑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정확히 그 다음날, 그 둥지에는 파랑새는 없었다. 먹이를 찾아 잠시 자리를 비웠을 거라고 생각해 봤지만 통학하는 동안 그 새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그저 버려진 둥지만 다리 밑에 고스란히 남아있었을 뿐. 이후, 한동안 난 그 새가 매우 그리웠다. 이미 떠나고 존재하지 않은 그 파랑새가 지녔던 순수한 미와 매력을 난 뒤늦게 깨달았던 것이다.

난 그 새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한동안 알 수 없었다가 주위 사람들로부터 그 새에 대한 이야기를 뒤늦게 들을 수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누군가는 그 파랑새가 다른 새와 같이 하늘 멀리 날아가는 걸 봤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 그 새는 소리 내어 노래했다고도 했다. 나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난 그 소문을 들었을 때 비로소 마음의 위로가 되었다. 최소한 그 새는 더러운 도시에서 오염되어 죽진 않았으니깐.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였으며 마음이 아려 오기도 하였다. 만약 파랑새처럼 고귀한 자연의 동물과 사람들이 한 곳에서 같이 살 수 있었더라면 난 그 아름다운 파랑새를 매일같이 바라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의 세상은 그렇지 못했으며 작고 어린 내가 그 새를 해줄 수 있었던 일 또한 아무것도 없었다.

"차라리 그 파랑새와 함께 자연으로 돌아간 그 새가 나였더라면..."

그 새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 가슴 앓이로 고생하던 그때 난, 그렇게 괴로워하며 아파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새는 내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