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어둠의 참상" 에 대해서 들어본 적 있는가? 어둠보다 더 어두운 그 존재는 마치 공포를 직시하는 것처럼 모든 이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 소문 속의 존재이다. 설사 소문일지라도 입에서 입으로 퍼져온 그에 관한 이야기는 마치 어젯밤 꿈처럼 기억에 생생하면서도 충격적인 삽화를 보듯 뇌리에 박혀 한때 사람들은 그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굳게 믿었다.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서쪽 폭풍의 강 건너 구릉지대로 배경을 옮겨야만 한다. 그곳에서 간혹 그를 봤다는 소문이 여러 존재했다. 그에 대한 목격담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와전됐을지 모르지만 하나같이 똑같은 증언도 분명 존재했다. 초승달이 뜨는 밤, 언덕 위에 살며시 드러나는 그의 정체. 마치 어둠을 두르듯 경계가 불분명한 커다란 암흑 망토를 두르고 있는데 망토 안으로 비치는 그의 몸체는 마치 블랙홀처럼 빨려들 것만 같은 심연 같다고 했다. 그리고 월광을 삼키듯 번뜩이는 두 눈동자를 바라보자면, 마치 보는 이의 영혼이 전소하는 듯한 전율에 온몸이 마비될 지경이라고 했다. 무엇보다도 그를 보기 전엔 반드시 종소리가 구릉지대에 울려 퍼졌다. 그것이 실제로 종소리인지 확인된 바는 없으나, 그 근원지는 분명 어둠의 참상이 분명하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그를 목격한 사람들에겐 어둠의 참상은 "죽음" 그 자체였다. 그건 저주였고 회피의 대상이었다. 그 누구도 어둠의 참상을 긍정적으로 이야기한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그 경험을 증오하고 저주했다. 이 때문에, 이야기 속의 어둠의 참상은 주위 모두가 공감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다. 가십거리로서, 욕지거리에 적합한 이름이었으며 어떤 무리의 사람들은 그 존재를 찾아 파멸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에 대한 가장 신뢰할만한 이야기가 하나 존재한다. 그 이야기는 국립 역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서적 "버나드의 여행기" 에 기록되어 있다. 그 기록지는 버나드 자신의 여행기를 담고 있는데 그가 여행 도중에 알게 된 어둠의 참상에 대한 기록도 존재한다. 다음은 그의 기록지에서 발췌한 이야기의 핵심이다.


「어둠의 참상에 대한 진실 여부를 논하는 것은 더는 의미가 없다. 그건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어둠의 참상은 바로 나의 오랜 친구 "트루크"임에 틀림없다. 분명하다. 내 친구 트루크는 이전에 그가 구릉지대를 지나면서 소문의 어둠의 참상과 매우 유사한 존재를 마주한 사실을 나에게 이야기해 준 적이 분명 있었고, 사실 그때만 하더라도 우리는 서로 어둠의 참상에 대한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트루크가 사라진 이후 어느 날, 난 여러 방면에서 어둠의 참상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어둠의 참상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당시, 난 트루크가 나에게 해주었던 어둠의 참상에 대한 그의 기억을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과거에 트루크와 란드라서 그리고 나는 세피로를 만나기 위해 어느 가을날 서쪽의 키콜라스 산으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그 여정의 중간에 폭풍의 강을 건넜는데, 불의의 사고를 당해 서로 흩어지고 말았다. 나는 불행히도 란드란서와 함께 "다크무어"로 휩쓸려서 그 어둠의 대지를 란드란서와 함께 고전했지만 -돌이켜보면 그건 오히려 행운이었다-, 트루크는 다크무어 보다 조금 더 남쪽인 구릉지대로 휩쓸려 가고 말았다. 갈라진 파티에서 트루크는 조금은 외로움을 느꼈겠지만, 그는 숭고한 정신과 강인한 의지로 가득한 친구였다. 그는 다시금 서로가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우리의 최종 목적지로 홀로 꿋꿋이 나아갔다. 


초승달이 뜬 저녁이었다. 가을밤의 바람은 싸늘했고 그는 다소 지친 육신을 다스리며 홀로 구릉지대를 지나가고 있었다. 밤이 깊어 야영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을 무려, 그의 앞의 언덕 위엔 낯선 그림자가 달빛을 삼키고 있는 것을 그는 느꼈다. 순간 을씨년스러우면서도 날카로운 종소리가 그의 귓가에서 울려 퍼졌다. 그는 소름이 돋았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리곤 언덕 위를 주시했다.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그보다 더 진하고 탁한 어둠이 마치 검은 물감 속에 퍼져 나가는 암흑처럼 울렁거리는 것을 그는 시각적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그건 분명 단순한 어둠이 아니었다. 어떤 존재가 있음에 틀림없었다.


트루크가 이야기하길, 그 어둠의 존재로부터 그는 마치 죽음을 대동하는 "지옥의 개"의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의 눈동자는 마치 어둠 속의 늑대의 눈빛? 아니, 자세히 보니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고 했다. 그건 말 그대로 그날 밤에 존재하는 모든 빛을 흡수하는 심연이었으며 그 두 눈을 마주하자니 자신의 영혼까지 빨려들 정도였다고 했다. 전쟁 속 강인한 정신을 소유하지 않는 자라면 거기서 이미 운명은 다할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트루크는 결코 뒷걸음치지 않았다. 그는 비록 그 존재를 처음 보았지만, 그 어둠의 존재로부터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죽음을 목격했다. 아니, 직감했다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는 어둠의 존재가 구릉지대를 지나는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로부터 뿜어져 오는 기운은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었으며 그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그는 두 검을 뽑아들었다. 다행히도 그의 두 손은 강인함 힘으로 가득 찼다. 그의 용맹은 그 어둠의 존재에 절대 뒤지지 않았다. 그는 순식간에 그 어둠의 존재가 가로막는 언덕 위로 뛰어들었다. 언덕 위는 순식간에 일렁이는 월광과 암흑이 뒤섞이고 흩어졌다. 트루크는 그 어둠의 존재가 보랏빛으로 일렁이는 검을 휘둘렀다고 했다. 트루크 역시 어둠의 존재에 맞서 두 검으로 맹렬하게 투쟁했다.  


당시 난 트루크에게 그 어둠의 존재와 꼭 결투해야만 했는지 물었다. 그가 대답하길, 그 선택은 그의 마음속의 정당한 울림의 결의였다고 했다. 그건 모두를 위한 자신의 숭고한 희생이었으며 그 존재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훗날 자신의 자손들에게 부끄러움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에겐 아직 용맹의 불꽃이 살아있었으며, 그 때가 비로소 그가 세상을 위한 보이지 않는 헌신을 할 기회이기도 했다고 했다. 그 누구도 원하지는 않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그는 직감했으며 그 선택이 바로 자신의 운명이었다고 믿는다고 했다.


전투는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트루크는 지쳐갔지만, 어둠의 참상의 상태는 가늠할 수가 없었다. 밤이 지나 새벽녘까지 전투는 계속되었고 트루크는 간신히 그의 공격을 받아낼 수 있을 정도였다고 했다. 그는 오로지 경험과 신념으로 싸움을 지탱할 수 있었다. 


난 그의 이야기로부터 그날 밤 그 구릉지대에 새겨진 한 남자의 숭고한 정신에 감탄했다. 아,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 외로운 곳에서 공포에 맞서 싸웠던 한 남자는 과연 무엇을 기대했을까? 그 전투의 끝은 그에게 어떤 의미로 남겨졌을까? 설사 그게 패배일지라도 말이다. 어쩌면, 그는 승패 따윈 안중에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 전투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곤 어쩌면 기쁜 마음으로 온 힘을 다해 싸웠을지도.


전투의 종결은 어처구니없었다. 그들의 싸움은 절대 끝나지 않을 듯 보였지만 비로소 동틀 녘, 태양이 떠오르는 순간 어둠의 존재는 잿빛 연기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고 했다. 그건 결코 도주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가 사라져버린 자리엔 그가 휘둘렀던 칼자루만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칼자루엔 검날도 보랏빛 연기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차갑게 식어버린 칼자루였다.


트루크는 그 칼자루를 지쳐버린 눈동자로 한동안 바라봤다고 한다. 그리곤 본능에 따라 그 칼자루를 거머 쥐었다. 어떤 느낌이었을까?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는 그 칼자루는 비록 검날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뭔지 모를 오래된 매력이 물씬 풍겼다고 했다. 그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그 칼자루를 쥐곤 보랏빛이 일렁이는 검날을 상상해 보았다. 상상의 검날을 허공에 한두 차례 휘두른 후, 만족해하며 자신의 배낭에 그 검자루를 기념품으로 챙겼다.


여기까지의 이야기가 트루크가 마주했던 어둠의 참상에 관한 내용이다. 이후 그는 성공리에 여정을 마쳤고 란드란서와 나는 최종 목적지에서 그를 다시 만나 그 이야기를 직접 건네 들을 수 있었다.


사실, 여기까지였다면 행복한 결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해 봄 어느 날 갑자기 트루크로부터 편지를 한 통 받았다. 그 편지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으며 그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 검자루가 지닌 비밀을 알 수 있을 것 같네. 이제야 비로소 말이지. 그 검자루엔 마법의 비밀이 틀림없이 존재해. 난 내일 당장 그 비밀을 확인하러 그 구릉지대를 향해 다시 떠날 것이네. 하지만 자네까지 따라올 필요는 없어. 왜냐하면, 거기엔 나 혼자 공감할 수 있는 추억이 존재하거든. 하지만 걱정 말게. 내가 비밀을 밝힌 후 자네에게도 꼭 멋진 이야기를 전달해 줄 테니.


사실 그 통보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난 그 어둠의 존재에 관한 이야기는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둠의 참상이라는 이름조차도 몰랐다. 하지만 이후, 시간이 지나도 트루크에 대한 소식은 들을 수 없었고 오히려 엉뚱하면서도 섬뜩한 소문만 들려왔다.


그건 바로 어둠의 참상에 대한 소문이었다. 어느 날 어둠의 참상에 관한 이야기가 도시 곳곳에 퍼졌고 그 소문의 내용을 직접 분석해 보자면, 그 구릉지대로 떠난 트루크의 마지막 모습만이 연상될 뿐이었다. 그리고 어둠의 참상에 대한 이미지는 과거에 트루크가 파멸시킨 어둠의 존재와 무서울 정도로 유사했다. 아니 사실 트루크가 무찌른 그 존재는 어둠의 참상이 확실했다. 난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트루크는 그 존재를 이미 파멸시키지 않았던가?


모든 이야기는 점점 더 분명해져 갔다. 구릉지대로 돌아간 트루크는 검자루의 비밀을 밝힌 이후 본인이 어둠의 참상이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건 비밀이 아니라 검이 선사한 저주였을 것이고 그의 의지와 상관없는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트루크는 그 검날을 쥐어든 순간부터 이미 저주에 빠지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난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그 구릉지대로 떠나기로 했다. 지금 내가 작성하는 이 이야기는 만일을 위해 남겨두는 나의 유언이다. 사람들이 증오하고 멸시하는 그 괴물의 존재가 바로 나의 친구라면 그를 용서해 달라. 한 때 숭고한 정신과 영혼을 지녔던 그의 순순한 의지를 이해해 달라. 사람들은 어둠의 참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라고 울화통이지만, 그것을 해결하려고 했던 보석 같은 이들이 바로 어둠의 참상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달라. 당신이 지금보다 조금 더 용맹하고 정의와 희생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면, 당신이 바로 그 어둠의 참상의 저주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여기까지가 버나드의 일지에 존재하는 어둠의 참상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버나드의 일지 역시 끝이 난다는 사실이 조금 안타까울 뿐이다. 사람들은 버나드가 위대한 인물이었다고 평가하지만, 어쩌면 진정한 선구자는 그의 친구 트루크였으며 비록 그들이 당시의 사람들에겐 어둠의 참상이라는 괴물로서 평가되었지만, 보다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현대의 인물학에서는 그들은 정의를 수호하려고 자신들을 희생한 당대의 위인들로 재평가받고 있다.